[In a Better World]가슴 속 하나씩 상처를 가진 사람들(세상) 이야기



참 담백하다.
무덤덤하다. 잔인할 정도로 메말라 있는 듯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흡입력이 있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지.
난 관찰자이지만,
곧 내가 영화 속의 구성인물이 되어 
나 역시도 같은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지.

영화는 내내 폭력, 분쟁, 빈곤, 가정(불륜. 이혼) 민족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민족간 갈등
아프리카 빈곤국의 난민 촌. 국가간 부의 불균형
학교 내에서의 학생들간의 폭력
사회에서 단순한 강자(지위적 강자가 아닌 육체적 강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
가정 불화가 주는 자녀에게의 폭력

이러한 갈등(폭력)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폭력은 진정 악순환될 뿐인가.
과연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인가.

그래서 엘리아스 부자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똑같이 폭력앞에서 무기력하다. 
학교의 강자에게. 사회적 강자에게 당하기만 하고, 
알지만 어찌 대응도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티앙.
폭력의 연결고리이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래서 더 폭력적이다.
그의 환경에서 배웠던 단 하나의 생존법칙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인다.

그에게서 엘리시아는 억압에 대한 대응으로서 같은 폭력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유일한 저항무기 칼은 그래서 엘리시아에겐 종교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에 반해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진 부자에게
아빠는 다른 다른 방법을 보여줬지만 보기좋게 실패했다.
엘리시아와 크리스티앙에게는 그렇다는 거다.
(뭐 어쩌면 아빠에게도 그럴지도)

그렇다면 안톤에게 내재된 폭력성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내가 예상한대로다. 
절대 폭력의 핵심과 맞닿았을때 안톤의 대응은 어떠했나.
그가 가진 힘으로 빅맨을 살릴것인가
아니면 그를 죽게해 앞으로 약자들의 피해를 막을 것인가. 
그를 죽게 두면 앞으로 그와같은 폭력은 사라지게 될것인가. 
처음의 그의 대답은 아니었다.
I decide in my camp!!!

빅맨은 똑같은 환자였을뿐이었고,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빅맨 역시 생명으로서 존중받아야하고, 그가 없어지더라도 제2의 빅맨이 나타날것이기 때문이다.(오마르)

하지만, 그 여기 불안전한 인간일 뿐.
Little Pussy, Big Knife....

그의 이성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빅맨의 희생자 안으로 그를 떨어뜨려버린다.
너무나 인간적인 복수. 그가 할 수 있는 복수.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겠지.
그리고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되는거다.

그렇다면 올바른 대응은 무엇인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서 마리안느가 약자의 분노를 담아 크리스티앙에게 울부짖었다.

크리스티앙에게 악에게(악을 생산하고 증폭시키는 존재)....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할 수 있다 생각하는 나쁜 녀석
폭력의 전달은 같은 폭력의 생산이라고....


다만, 한가지 의문점

처음 안톤의 미온적인 대응이 더 큰 참사를 불러온건 아닐까.
폭력으로 맞대응하는 것보다 그 폭력에 침묵하는 것이
더 나쁜 일이 아닐까.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있다면, 당한다면
당당히 그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침묵은 결국 더 큰 희생을 낳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북유럽의 사회적 시스템이 
맹목적 배금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에 휩싸인 우리나라를
생각해볼때 너무나 부럽다.

적어도 그곳에는
사회적 평등-직업에 따른 사회의 불이익이 없는 듯 보였다.

by Lachrimae | 2011/09/18 10:59 | 有我內夢 | 트랙백 | 덧글(0)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PSK's Review



모든 걸 떠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불편했던 영화.

시저의 탄생과 성장 인간화 과정 내내
존재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만든 영화.
동양적 자아성찰을 강하게 요구한 서양 영화.

나를 이 영화로 이끈 한마디는 바로 이것
'다크나이트를 능가하는 프리퀄'

결론은?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비교도 힘들다.

가장 큰 차이점은
다크나이트에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아주 표독스레 살아있다.
미스캐스팅의 오점인 레이첼을 제외하곤 
부르스, 조커, 하비, 알프레드, 고든, 폭스.... 심지어는 단역의 경찰들까지 그들 모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110% 수행했다.

게다가, 고담시에 해가 지면 활동하는 배트맨 시리즈를 벗어나
밝은 대낮의 고담시를 거침없이 표현했고,
그런데 밝기만 밝았을 뿐, 영화적 분위기는 더욱 침잠되는 놀라운 연출까지 가미된 다크나이트에
어찌 '진화의 시작'이 비교가 될수 있을까...

[진화의 시작]에는 오직 시저만 있다.
오직 시저만!!!

주인공 윌을 연기한 제임스 프랭코조차 영화 속에 뭍히지를 못하고 겉돌기만 했으니, 하물려 다른 캐릭터들은 어떠했을까.
어색한 등장부터 이상했던 캐롤라인, 계속 당하기만 한 옆집 조종사, 치매의 아버지, 그리고 유인원 보호소의 악당 톰펠튼까지 뭐하나 인상적인 역할이 전혀 없다.

굳이 뽑으라면 시저의 앤디 서키스 정도로랄까.
그도 영화 말미엔 인간을 연기했으니, 뭐 어느정도의 감동은 반감되기는 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점은 영화 구성 및 전체적인 개연성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너무 서두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거친 유인원들을 다루지 못하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

캐롤라인의 등장. 윌의 과학적 활동, 시저를 괴롭히는 인간 악당, 시저를 구하기 위해 전혀 적극적이지 않은 윌,
그리고  112는 주사액이었으나 113은 기체화한 것도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한 억지에 가깝다.
좀더 전후좌우 관객에게 좀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뭐 영화적인 얘기는 여기까지다.

다만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한 연약한 존재가 자신의 어떠한 보호기재가 순식간에 제거되었을때 경험하게 되는 공포, 두려움, 고통 등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뛰어노는 어린 시저와 장난치는 시저를 보면
그곳에 나의 어린 아이가 투영되었다.

낯선 곳에서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을때도 
내 아이가 그럴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윌의 안이한 행동이 더욱 이해가 안갔고, 영화의 몰입도가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시저의 아빠라고 지칭했음에도 말이다.

또하나는
내가 누리는 이 문명은 결국 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명의 희생으로 건설된 피의 제국이라는 점이다.
내가 마시는 음료, 약, 문명의 혜택 모두에는
그에 상응하는 어쩌면 더 큰 희생이 있지 않았을까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른 존재(생명)를 
가차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실험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쌓은 문명임이 확실한데
나의 심장은 그들의 억울한 희생이 너무나 안타까운데 
그런 문명을 난 거부할 수 있을까?

못한다.
그래서 난 비겁한거다.
그래서 영화가 아니 영화 안의 하나의 화두가 내내 고통스러웠던 거다.

그리고 말까지 하게된 유인원...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는 것일까?
원래 있었던가 아니면 없던 것이 사고를 하면서 생기게 된 것일까?

존재에 대한 불확실한 확신이 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감독에게도 고민이었겠지
내게도 역시 그것은 평생 궁금해할 문제이다.

by Lachrimae | 2011/09/15 14:21 | 有我內夢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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